자녀들이 독립한 뒤 넓은 집을 유지하는 부담을 덜고, 콘도나 방갈로 등보다 실용적인 주거 형태로 옮겨 자산을 확보하는 것은 오랫동안 은퇴자들의 이상적인 계획으로 여겨져 왔다.

그러나 최근 들어 이 같은 ‘다운사이징’ 전략이 현실적으로 쉽지 않다는 평가가 확산되고 있다.

부동산 업계에 따르면 주택 가격 하락과 매물 부족 등 시장 환경 악화로 인해 상당수 은퇴자들이 주거 축소 계획을 보류하고 있는 것으로 나타났다. 다만 일부에서는 경제 신뢰가 회복될 경우 점진적인 다운사이징 수요가 다시 나타날 가능성도 제기된다.

 

“적합한 소형 주택 부족”…이동 유인 약화

 

토론토의 부동산 중개인 팀 시리아노스(Tim Syrianos)는 “인구 고령화가 진행되면서 다운사이징 논의는 점점 더 커지고 있다”고 밝혔다.

그는 “대형 주택에 거주하는 이들이 더 작은 집으로 옮기려 해도, 적합한 주거 선택지를 찾기 어려워 이동의 이유를 찾지 못하는 경우가 많다”고 설명했다.

리맥스 캐나다의 설문조사에 따르면 향후 10년 내 더 작은 집으로 이주할 계획이 있다고 답한 캐나다인은 10%에 불과했다.

특히 65세 이상 응답자 중에서는 16%만이 다운사이징을 고려하고 있었으며, 57%는 현재 주택에 계속 거주할 계획이라고 답했다. 17%는 임대를, 9%는 아직 결정하지 못했다고 밝혔다.

다운사이징을 고려하는 응답자 가운데서도 선택지 부족에 대한 우려가 컸다. 절반에 가까운 응답자가 지역 내 적절한 소형 주택 공급이 부족하다고 답했으며, 8%는 아예 선택지가 없다고 응답했다.

 

구조적 공급 부족…“시장 설계의 문제”

 

이 같은 인식은 장기간 누적된 주택 공급 부족의 결과라는 분석이 나온다.

시리아노스는 “은퇴자들에게 적합한 규모와 구조의 주택 공급이 충분히 이뤄지지 않았다”며 “시장 설계 자체가 장기 수요를 반영하지 못한 측면이 있다”고 지적했다.

특히 과거 개발된 450~550제곱피트 규모의 소형 콘도는 실질적인 다운사이징 대안으로 기능하기 어려웠다는 평가다.

그는 “다운사이징은 단순한 면적 축소가 아니라 생활 방식에 맞는 공간으로의 이동인데, 기존 공급은 이러한 수요를 충족시키지 못했다”고 말했다.

 

집값 하락·경제 불확실성 ‘이중 부담’

 

최근 주택시장 둔화도 다운사이징 지연의 주요 요인으로 꼽힌다.

글로벌 무역 갈등과 경기 불확실성으로 캐나다 주택시장은 지난 1년간 둔화세를 보였고, 이에 따라 집값은 팬데믹 이후 고점 대비 하락했다.

핀테크 기업 블룸 파이낸스의 창립자 겸 최고경영자 벤 맥케이브(Ben McCabe)는 “현재 가장 큰 변수는 2022년 고점 대비 상당 폭 하락한 주택 가격”이라고 설명했다.

시장 반등 전망이 제기되고 있음에도 불구하고, 매수자들은 가격이 바닥을 확인하기 전까지 움직이기를 주저하고 있으며, 이는 매도자들의 계획 지연으로 이어지고 있다.

쇼어라인 리얼티의 마르코 페드리(Marco Pedri) 역시 “많은 은퇴자들이 지금이 적절한 시점인지 신중하게 판단하고 있다”고 전했다.

그는 “주택 가격 하락으로 자산 가치가 줄어들었을 가능성을 고려해야 한다”며 “다운사이징이 반드시 필요한 상황이 아니라면 지금은 매도 시점이 아닐 수 있다”고 말했다.

 

이사 비용·가족 지원 부담도 변수

 

이사에 따른 비용 부담 역시 중요한 걸림돌이다.

맥케이브는 중개 수수료, 취득세, 이사 및 리노베이션 비용 등을 포함한 이른바 ‘마찰 비용(friction costs)’이 매각 대금의 최대 15%까지 차지할 수 있다고 설명했다.

여기에 더해 일부 은퇴자들은 자녀 등 가족을 경제적으로 지원하기 위해 주거 이동을 미루고 있는 것으로 나타났다.

블룸 파이낸스 조사에 따르면 응답자의 75%가 가족 지원으로 인해 은퇴 자금이 줄어들고 있다고 답했다.

맥케이브는 “생활비 상승은 모든 연령층에 영향을 미치고 있지만, 고정된 은퇴 자산에 의존하는 고령층에 더 큰 부담으로 작용하고 있다”고 분석했다.

 

장기적으로는 다운사이징 수요 확대 전망

 

다만 전문가들은 현재의 정체가 장기적으로 이어지지는 않을 것으로 보고 있다.

최근 토론토와 밴쿠버 등 주요 도시에서 신규 공급 증가로 콘도 가격이 하락하면서, 단독주택에서 소형 주택으로 이동하려는 이들에게는 오히려 기회가 될 수 있다는 분석이다.

리맥스 캐나다 조사 역시 인구 고령화를 배경으로 장기적인 다운사이징 수요 확대 가능성을 시사한다.

Statistics Canada에 따르면 2030년까지 캐나다 인구의 약 25%가 65세 이상이 될 것으로, 이는 현재 약 20% 수준에서 크게 늘어나는 수치다.

시리아노스는 “고령화가 심화될수록 다운사이징 필요성은 더욱 뚜렷해질 것”이라고 내다봤다.

페드리는 향후 은퇴자들이 자신의 상황에 맞게 주거를 재조정하는 ‘라이트사이징(rightsizing)’ 수요가 늘어날 것으로 전망했다. 일부는 시장 상황을 기다릴 여유 없이 유지관리 부담 때문에 이동을 선택할 수밖에 없다는 분석이다.

그는 “시장 상황이 매도에 불리하더라도 결국 중요한 것은 개인의 삶의 질”이라며 “숫자뿐 아니라 자신의 생활 여건에 맞는 선택이 필요하다”고 강조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