캐나다 중앙은행이 미국과의 무역전쟁 재격화와 중동발 에너지 가격 상승 등 복합적인 위험 요인을 주시하면서 기준금리를 2.25%로 동결했다. 티프 맥클렘 중앙은행 총재는 미국과의 무역 갈등만이 통화정책 결정 과정에서 고려해야 할 위험 요인은 아니라며 여러 변수의 전개 상황을 지켜보겠다는 입장을 밝혔다.

캐나다 중앙은행은 2일 기준금리를 2.25%로 유지했다. 지난해 이후 7회 연속 동결이다. 이번 결정은 시장에서도 이미 예상했던 수준이다.

중앙은행은 이란 전쟁으로 촉발된 비용 상승 압력이 소비자물가 전반으로 확산될 가능성을 주시해 왔다.

 

유가·중동 정세에 인플레이션 위험 다시 커져

 

맥클렘 총재는 이날 금리 결정 이후 인플레이션 위험이 지난 7월 결정 때보다 더욱 뚜렷해졌다고 평가했다. 국제 유가가 여전히 높은 수준을 유지하고 있는 데다 중동 분쟁 역시 끝날 기미를 보이지 않고 있기 때문이다.

반면 캐나다 경제는 8월 22일부터 캐나다산 제품 상당수에 대한 미국의 새로운 관세가 부과되기 전까지 회복세를 보이고 있었다. 캐나다는 오는 9월 8일부터 미국의 관세에 대응한 보복 관세를 추가로 부과할 계획이며, 미국 역시 추가적인 관세 확대를 예고하고 있다.

맥클렘 총재는 새롭게 부과된 관세가 올해 4분기 경제성장률을 떨어뜨리고 특정 산업에는 상당한 타격을 줄 것으로 전망했다. 다만 캐나다 전체 경제에 미치는 직접적인 영향은 크지 않을 것으로 내다봤다.

현재 경제 상황이 중앙은행의 기존 전망에서 크게 벗어나지 않고 있다는 점도 이번 금리 동결의 배경으로 작용했다. 중앙은행 통화정책위원회는 경제가 당초 전망과 대체로 비슷한 흐름을 보이고 있다고 판단해 기준금리를 현 수준에서 유지했다.

중앙은행의 역할은 관세나 국제 에너지 가격 자체를 통제하는 것이 아니라, 외부 충격이 캐나다의 물가 안정성을 훼손하지 않도록 대응하는 데 있다는 것이 맥클렘 총재의 설명이다.

다만 그는 금리 결정 직후 열린 기자회견에서 현재 중앙은행이 인플레이션과 경기 둔화 가운데 어느 쪽을 더 심각한 위험으로 보고 있는지에 대해서는 명확한 답변을 내놓지 않았다.

맥클렘 총재는 캐나다가 미국산 제품에 부과하는 보복 관세가 물가에 미치는 인플레이션 효과는 비교적 제한적일 것으로 평가했다. 오히려 국제 에너지 가격 상승이 물가를 끌어올리는 가장 큰 요인으로 남아 있다고 강조했다.

7월 캐나다 물가상승률은 3%를 기록했다. 중앙은행의 물가 목표치인 2%보다 1%포인트 높은 수준이다. 맥클렘 총재는 현재 물가 수준이 중앙은행 입장에서 안심할 수 있는 수준은 아니라고 지적했다.

중앙은행의 금리 결정은 여전히 향후 인플레이션 전망을 핵심 기준으로 삼고 있다. 구체적인 물가 전망은 오는 10월 28일 다음 금리 결정 때 업데이트될 예정이다.

 

“금리 인상·인하보다 여러 위험의 우선순위가 중요”

 

RBC의 프랜시스 도널드 수석 이코노미스트는 맥클렘 총재가 이번 회견에서 인플레이션 상승 위험을 강조하면서 중앙은행의 정책 방향에 분명한 선을 그었다고 평가했다.

당초 상당수 경제 전문가들은 미국과의 무역전쟁 재격화로 인한 경기 둔화 위험이 중앙은행의 주요 메시지가 될 것으로 예상했다. 그러나 맥클렘 총재는 오히려 물가 상승 위험을 상당히 강조하며 시장의 예상과는 다소 다른 메시지를 내놓았다.

도널드 이코노미스트는 현재 상황을 종합하면 맥클렘 총재가 경기 타격보다는 인플레이션이 다시 살아나는 상황을 더 우려하고 있을 가능성이 높다고 분석했다. 다만 이것이 곧바로 기준금리 인상을 의미하는 것은 아니라고 선을 그었다.

중앙은행의 정책을 단순히 ‘매파’와 ‘비둘기파’, 즉 금리를 올릴 것인지 내릴 것인지의 이분법으로 바라보기보다는 현재 동시에 진행되고 있는 여러 위험 요인의 우선순위를 살펴봐야 한다는 것이다.

 

무역전쟁 대응은 정부·기업 몫…기업 적응력에는 기대

 

맥클렘 총재는 관세 충격으로부터 캐나다 경제를 보호하기 위해 필요한 조치 가운데 상당수는 중앙은행의 역할 범위를 벗어난다고 밝혔다.

대표적으로 캐나다 수출시장을 미국 이외의 국가로 다변화하는 문제는 중앙은행이 해결할 수 있는 사안이 아니라 정부와 민간 부문이 담당해야 할 영역이라는 설명이다.

미국의 최신 관세가 발효되기 전 캐나다의 수출은 다시 증가세를 보이기 시작했다. 맥클렘 총재는 새로운 무역 제한 조치가 기업들의 투자와 사업 심리를 다시 위축시킬 가능성을 경고하면서도, 기업들이 불확실한 환경에 적응하고 있다는 점에는 긍정적인 평가를 내렸다.

기업들이 불확실성이 커지고 관세가 높아진 환경에서도 사업 방식을 조정하면서 대응하고 있다는 것이다.

그는 이런 기업들의 적응력이 최근 미국의 새로운 관세 조치가 시작되기 전 캐나다 경제가 상대적으로 나은 기반을 갖추는 데 도움이 됐다고 평가했다.

도널드 이코노미스트는 이 같은 경제의 회복력이 중앙은행에 시간을 벌어 주고 있다고 분석했다. 무역전쟁과 인플레이션 압력이 실제 경제에 어떤 방식으로 영향을 미치는지를 좀 더 지켜본 뒤 금리 조정 여부를 결정할 수 있다는 것이다.

또한 올가을 캐나다 연방정부가 발표할 예산안에 어떤 경기 부양책을 담을지도 확인할 수 있게 됐다. 정부가 재정정책을 통해 필요한 부분에 지원을 제공할 경우 중앙은행이 금리를 통해 추가 대응해야 할 필요성이 줄어들 수 있다.

도널드 이코노미스트는 현재 캐나다 경제에 필요한 것은 모든 분야에 일률적으로 적용되는 지원이 아니라, 실제로 도움이 필요한 사람과 산업, 지역을 대상으로 한 선별적인 지원이라고 평가했다. 중앙은행의 통화정책은 정책 수단의 특성상 이런 방식의 정밀한 지원을 제공하기 어렵기 때문에 재정정책의 역할이 중요하다는 설명이다.

 

12월 금리 인상 가능성도 다시 부상

 

캐피털 이코노믹스의 스티븐 브라운 북미 수석 이코노미스트는 중앙은행이 기준금리를 인상하려면 실업률이나 경제성장률이 추가로 개선되는 신호가 필요할 것으로 전망했다.

다만 국제 유가가 좀처럼 떨어지지 않고 있다는 점을 감안하면 올해 마지막 금리 결정이 이뤄지는 12월 회의에서 금리 인상 가능성도 배제할 수 없다고 분석했다.

금융시장 역시 금리 인상 가능성을 점차 반영하고 있다. LSEG 데이터에 따르면 2일 정오 기준 시장은 2027년 중반까지 세 차례의 0.25%포인트 금리 인상을 예상하고 있다. 이 가운데 한 차례는 올해 안에 이뤄질 가능성까지 반영돼 있다.

반면 오는 10월 중앙은행의 다음 금리 결정에서 금리를 동결할 가능성은 92%를 웃돌았다.

 

채권금리 상승…주택시장에는 이미 긴축 효과

 

도널드는 인플레이션 위험에 대응하기 위해 필요한 긴축의 일부는 이미 채권 금리 상승을 통해 진행되고 있다고 지적했다.

최근 몇 주 동안 글로벌 채권금리는 미국의 재정적자와 물가 상승에 대한 우려가 커지면서 전반적으로 상승세를 보였다.

특히 2일 캐나다 5년 만기 국채금리는 시장이 향후 기준금리 인상 가능성을 다시 반영하면서 2년여 만에 가장 높은 수준까지 올랐다.

5년물 국채금리는 캐나다 금융시장에서 상업대출 금리와 고정금리 모기지 금리에 중요한 영향을 미치는 지표다. 따라서 국채금리가 상승하면 중앙은행이 실제 기준금리를 인상하지 않더라도 금융시장 전반의 차입비용이 높아질 수 있다.

도널드는 이런 점을 들어 중앙은행이 기준금리를 인상했을 때 나타날 수 있는 긴축 효과 가운데 일부는 이미 시장금리 상승을 통해 진행되고 있다고 분석했다.